어쩌면 시기질투는 당연한 심사인지 모른다.
오경석의 인장이 찍힌 버전은 아니지만.구역별 담당 감독관이 자기 이름과 직함을 돌에 새겨 넣는 관례가 있었나 보다.
전시장에는 외국인 대여섯이 오세창의 병풍 앞에서 ‘뷰티풀을 연발하며.이들이 우리 고유의 역사와 기록을 발굴하고 보존하고자 했던 누대에 걸친 노력이 켜켜이 묻어있었다.앞으로 어르신의 지도를 구하고자 합니다.
여기서부터 동쪽 12리를 무슨 직위를 가진 아무개가 축조했다라는 식의 내용이 적힌 돌덩어리들이 남아있기 때문이다.그의 이름은 애국계몽운동사에도 3·1운동사에도 등장하지만.
남한에는 딱 1개가 이화여대박물관에 있어.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오경석이 구한 고구려 성벽 돌 부친 뜻 이어 아들 세창이 보존 전형필의 ‘문화재 스승 오세창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의 감동 이 보물을 처음 손에 넣은 이는 오경석(1831~1879)이었다.이들의 종교는 같은 뿌리의 유일신 사상이다.
2천년전 예수의 행적은 곳곳에서 손에 잡히며.기독교도 모두의 삶 속에 퍽떡펄떡 살아 있다.
구약성서 속 다윗(이스라엘)과 골리앗(팔레스타인) 이후 3천년간 전쟁은 이어져 왔다.로마제국에 의해 추방된 이후 2천년간 세계를 떠돌던 유대인들이 1948년 이스라엘을 건국함으로써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것도 종교의 힘이다.